기사제목 [전통시장 탐방] 조선시대부터 ‘흥망성쇠’ 파주 전통시장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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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탐방] 조선시대부터 ‘흥망성쇠’ 파주 전통시장 스토리

기사입력 2018.08.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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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금촌시장.jpg▲ 70년대 금촌시장. 사진=파주시청 제공
 
[중소벤처신문=심재학 기자] 파주는 고려시대에는 도읍지 개성의 동교(東郊)로 조선시대에는 수도 한양의 서교(西郊)로 칭해지며 왕성을 방위하고, 서울의 물자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또한 교하(交河)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한강과 임진강이라는 큰 강이 교차하는 곳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산물이 풍부한 물류 집산지였다. 파주의 전통시장이 어떻게 형성돼 왔고,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 그 흥망성쇠의 역사를 들여다보았다.
 
파주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1000여 년 동안 개경과 한성의 보호와 물자 보급을 담당했다. 그러나 교통이 편리하고 산물이 풍부하며 인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이전 파주의 경제는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다. 조정에서 수도의 물자 수급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 물류 유통에 제한을 두었기 때문이다.
 
파주가 도성과 경기 서북 및 관서 지역을 이어주는 상업 중심지로 부각된 것은 상거래가 활발해지고, 물산의 이동이 확대된 17세기 이후였다. 파주 장시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1111111.jpg▲ 19세기 초 파주 지도. 사진=파주시청 제공
 
  
◆ 조선 후기의 파주 전통시장
 
파주 지역 장시 현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였다. 이후 19세기 들어 1830년에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1834년경 ‘동여도지(東與圖志)’ 1850년경 ‘여도비지(與圖備志)’ 등에 기록됐다. 각 군현의 읍지(邑誌)에서도 지역별 장시 현황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 지역의 장시는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개설된 것으로 파악되지만 파주 지역 장시는 언제 시작됐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영조 때 기록에 봉일천장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8세기 이전에 장시가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나타나는 18·19세기 파주 지역 장시의 개시 현황을 보면 ‘동국문헌비고’ 시기에는 봉일천장·이천장·광탄장·장파장·부내장·사천장·고랑포장·원우장·두일장·입암장 등 총 10곳이 개시되었다.
 
‘임원경제지’ 시기에는 이전 시기 장시가 변동을 보이며 봉일천장·문산포장·눌로장·원기장·신화리장·삽교장·부내장·사천장·사미천장·구화장·고랑포장·도정장·두일장·오목천장·입암장·청수장 등 총 15개 장이 열렸다.

임원경제지.jpg▲ 임원경제지. 사진=파주시청 제공
 
  
이 시기에 석관면의 삽교장과 함께 아동면에 소재한 신화리장은 현재 금촌동으로 주공아파트가 세워진 공릉천변의 새꽃마을로 1830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곳은 많은 배들이 드나들어 성시를 이루었던 곳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파주 지역의 대표적인 장시의 거래 물품은 파주 봉일천장에서는 미곡·면포·마포·어염·소(牛)·옹기·사기·유기(버들고리)·비단 등이 거래됐고, 교하의 신화리장에서는 미곡·면포·과일·어염·연초 등이 팔렸다. 장단의 부내장에서는 미곡·면포·소·옹기 등이 취급됐고, 적성의 두일장에서는 미곡·면포·마포·과일(배, 밤, 감 등)·어염·소·연초 등이 유통됐다.
 
이후 19세기 중후반에는 16곳 정도의 장시가 열린 것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중복 기록된 장시를 제외하면 18세기에서 개항 이전까지 파주 지역에는 22기의 장시가 개설됐다. 이처럼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 사이에 장시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상업의 급속한 발달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문헌상으로 볼 때 장시의 개시 현황은 일관적이지 못하다. 파주·교하·장단의 경우 19세기 초반에 소멸되었다가 다시 열리거나, 19세기 초에 잠시 개설되었거나 이후 소멸되는 장시가 많았다.
 
기타 연대기 자료나 군현지도 등을 참고하여 장시의 개시 현황을 파악해 보면 파주의 문산포장·이천장·광탄장·장파장, 교하의 신화리장·삽교장 등의 장시가 지속적으로 열렸음을 알 수 있다.

금촌 소시장 옛모습.jpg▲ 금촌 소시장 옛모습. 사진=파주시청 제공
 
  
◆ 개항 이후의 파주 전통시장
 
개항 이후에도 파주 지역에서는 활발한 장시 활동이 이어졌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파주 지역 장시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로는 1888년 일본에 의해 간행된 ‘조선지지략(朝鮮地志略)’과 19세기 말 편찬된 각 군현의 ‘읍지’, 그리고 ‘동국문헌비고’를 개정한 1908년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이 있다.
 
파주 지역에서 19세기 중엽 개시했던 장시는 모두 16곳 정도로 파악된다. 개항 이후에도 여전히 16기의 장시가 개설되었으나 그 내용상으로는 장단의 도정장, 교하의 삽교장이 소멸되고, 적성의 신장, 장단의 판문장이 신설됐다.
 
지역별 장시 현황은 파주와 장단에서 6기가 열렸으며, 적성에서는 3기가 개설되었고 교하에서는 신화리장만이 상업 활동을 이어갔다.
 
파주에는 1906년 서울과 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도가 부설됐고, 이로 인해 서울 및 인근 지역과 더욱 활발한 물류 이동이 이뤄졌다. 1924년 발간된 ‘조선의 시장’에 의하면 신화리 오일장이 서는 날은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이었고, 오일장의 판매 물품은 곡물과 식료품이었으며, 출장 상인은 일일 평균 20명, 구매자 수는 500명이었다.
 
조선총독부가 1929년에 간행한 ‘조선의 시장경제’에서도 교하의 신화리장에 대해 ‘군동7리 아동면, 4·9’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도 신화리장이 공릉천변에 있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이 시장에서의 주요거래 물품은 미곡·연포·어물·과물·인석·연초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정창(文定昌)이 쓴 ‘조선의 시장’에는 1938년 말 현재 파주 일대의 장으로 문산포장(임진면 문산리, 5·10)을 비롯해 8개의 장이 있는데 그 중 하나로 금촌장(아동면 금촌리, 1·6)이 나와 있다.

80년대 금촌역 부근.jpg▲ 80년대 금촌역 부근. 사진=파주시청 제공
 
  
◆ 광복 이후의 파주 전통시장
 
파주 지역은 6·25전쟁을 계기로 임진강의 뱃길과 경의선 철도가 폐쇄되면서 물류 유통의 흐름이 막혀 상업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해방 이후의 자료로 1963년판 ‘최신 국토구역 총람’에 소개된 파주 일대의 장은 봉일천장(조리면, 2·7)을 비롯한 8개로 금촌장(아동면, 1·6) 등이 있다.
 
이 중 우시장이 있는 곳은 금촌시장, 천현시장(법원읍 천현), 샘내시장(파평면 샘내마을)이다. 또한 1976년 ‘한국 시장의 연구’에서도 파주 지역의 5일 정기 시장은 금촌장(1·6), 문산장(4·9), 법원장(3·8), 봉일천장(2·7), 적성장(5·10), 신산장(5·10) 등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 파주시에는 인증시장으로 금촌전통시장, 금촌문화로시장, 금촌명동로시장, 문산자유시장, 광탄시장, 적성시장, 봉일천시장 등 7개 시장이 있으며, 그 밖에 신산시장, 선유시장, 파주시장, 연풍시장, 자유시장(법원시장) 등이 있다.

김준근 기산풍속도첨(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jpg▲ 김준근 기산풍속도첨(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사진=파주시청 제공
 
  
파주 지역의 5일 정기시장은 금촌장(1·6), 문산장(4·9), 적성장(5·10), 광탄장(5·10) 등이 운영되고 있다. 금촌장은 1, 6일장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설시장과 함께 5일장이 서고 있다.
 
이 장터는 경기북서부지역에서는 가장 큰 시장인 금촌전통시장이 경의선 금촌역에 인접하여 고정 고객 및 관광객이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 살거리 등을 즐기러 시장을 찾는다.
 
문산장은 4, 9일장이다. 시장은 미림아파트에서 시작하여 문상자유시장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진다. 문산장에도 상인들은 생필품을 비롯 생선류와 옷가지, 나물, 채소, 육류 등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적성장과 광탄장은 5, 10일장이다. 적성장은 적성면사무소 인근부터 상인들이 나와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한다. 광탄시장은 광탄파출소 앞 사거리를 정점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전국 최초로 경매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파주시에는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시설현대화사업 및 경영현대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금촌사거리 구 시장 .jpg▲ 금촌사거리 구 시장. 사진=파주시청 제공
 
  
◆ 파주 장시의 입지
 
파주 장시는 임진강의 뱃길과 크게 연관이 있다. 임진강은 관서 지역과 근교 지역을 연결해 주는 중계지의 역할을 하며, 물류 유통의 근거지로 성장했다.
 
조선 후기에는 파주 인근의 육로도 정비됐다. 대표적인 길이 의주로인데, 이 길은 한양 도성과 중국을 연결하는 사행로로 관인과 행인들의 왕래가 잦았고, 물자의 이동도 빈번했다. 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정비된 의주로는 행정중심지와 군사 요충지를 잇는 것은 물론 상품 유통로로까지 발전했다.
 
파주의 장시는 입지 형태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1970년대 금촌시장 앞 길.jpg▲ 1970년대 금촌시장 앞 길. 사진=파주시청 제공
 
  
첫째는 수운의 활용을 위해 포구에 입지한 형태로 파주의 문산포장, 장단의 고랑포장과 이장포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비록 포구는 아니지만 임진강의 중소 하천에 개설된 장단의 사천장과 사미천장, 적성의 두일장, 교하의 신화리장 등도 유사한 성격의 장시다.
 
둘째는 사행로인 의주로 주변 주요 지역에 입지한 형태로 파주의 원기장과 광탄장, 장단의 판문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장시들은 주로 개성 상권과 연계하며 성장했는데, 특히 광탄원 자리에 있던 광탄장의 경우는 역과 원의 기능이 쇠퇴해 가던 시기에 개설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사행로의 지선에 위치하며 장과 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던 장시들도 있다. 교하의 삽교장, 눌노장과 장파장, 또한 적성의 오목천장, 입암장, 발운장 등이 그것이다.
    
셋째는 관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 입지한 형태로 조리읍의 봉일천장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장시들은 관권과 결탁해 장시를 발전시켜 나갔다. 예를 들어 파주읍내장과 봉일천장의 경우는 담배 등을 매점하는 파주 상인의 근거지였다.
 
파주 지역의 장시는 지역 내 상품 유통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관서 지역과 서해안의 산물을 도성으로 연결시켜 주는 중계지 역할도 담당하며 발전했다. 수운과 경의선 철도를 이용해 개항 이후에도 파주 지역의 장시에서는 여전히 상업이 성행했다. 파주 지역의 장시는 안성장 등과 더불어 도성 및 경기 지역의 물류 유통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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